조울증/당사자 경험 (수필)

집에서 정신병 있는 딸로 산다는 것

lesbian-life 2024. 8. 8. 20:40

오늘의 글감은 '크리스천 투데이'라는 신문사에서 쓴 글이 나의 글감이 되었다. 나 역시 할 말이 너무나 많다.
 
 혹시라도 집에 신체적인 만성질환이 있거나 아니면 정신질환이 만성질환이 된 자식이 있는가? 그리고 그 자식이 여성인가? 그럼 안타깝지만 나는 오늘 당신 같은 보호자를 비판할 것이다. 내가 자식이 없다. 나는 늘 자식의 입장이다. 그리고 앞으로 보호자가 되고 강아지의 보호자가 될 거 같다. 그래서 인간 자식 있는 입장에 이해는 어렵다.
 
 내가 만성질환자 자식이 있는 부모를 걱정한다는 것은, 쥐가 고양이 걱정하는 거랑 똑같다. 내가 그들을 왜 걱정하겠는가. 내 인권부터 어려워진 거 같은데. 불쾌하면 뒤로 가기를 누르기를 바란다. 
 
 


 
 나는 일단 여자다. 여자라는 이유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난 딸이다. 통금이 오후 6시에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남의 집에서 놀러 가는 거? 친구네 집에서 자는 건 더더욱 못했다. 나는 거의 닌자로 컸다. (애인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는 동성애자다 보니 이것저것 말이 많았다. 이건 '레즈비언' 카테고리에 따로 올리도록 하겠다.)
 
 나는 신체적인 만성질환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정신과'를 다닌다. 최근에는 '공황장애' 의심진단까지 받아버렸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나는 '못하는 아이' , '보호가 필요한 아이' , '내 관심이 필요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이 정도면 약과다. 내 일상에 모든 걸 해주려고 하다 보니 나는 이제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가 뭔가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야 내가 시도해 볼 권리가 생겼다. 이 권리도 내가..
 
"나는 성인인데 도대체 아무것도 못해 아무것도!"하고 소리 지르고 나니까 하게 되었다.
 
 

 
 '정서 발달'의 미숙이라.. 보호자들이 참 재밌다. 본인들도 정서 발달에 있어서 도와주는 보호자를 못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래서 보호자들의 편견이 어떤지에 따라서 중요하다는 걸까. 보호자들이 자식에게 1차 사회니까? 
 
 애초에 앞에서 말한 부분들이 정서 발달보다는 정신과 가게 만든다. 그런데 과잉 보호 하는 이유로 자식의 '정서 발달 미숙'이라. 끔찍한 톱니바퀴 속에 계속 굴러가고 있는 기분이다. 역시 보호자가 정서 발달 미숙을 계속 만들게 되면 멀어저야 한다. 한국은 너무 보호자와 자식이 가깝다. 가족 문제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사회다. 전문가의 개입이 너무 절실하다. 그런 전문가도 너무 바쁘거나 그 전문가를 위한 비용을 치르지 못한다는 점이 슬프다.
 
망할 자본주의. 그렇다 내가 가난해서 그렇다. 가난해서 자본주의 욕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태어난 이후 착취라는 착취는 이렇게 많이 당하게 되는데. 


 
"너는 못하니까 내가 해줄게"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다 얘기해 주겠다.
 
 일단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감기 하나도 내가 직접 예약을 해본 적이 없다. 병원을 같이 간다. 그리고 예약을 엄마가 해줬다.. 진단도 줘도 엄마가 다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진단서를 내 힘으로 가지고 있어 본 적도 없다. 약 수령도 엄마가 다해줬다. 나는 성인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해보려니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이제는 3회, 4회 정도 해보니까 좀 알겠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일상에 사소한 부분도 못하는 아이로 자란다. 그리고 보호자 너희는 늙는다. 평생 너희가 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 뭐 하는 가. 이제 늙어서 지치는데. 안 해봤기에 여전히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며 한숨을 보인다. 그리고 너희가 아닌 척 하지만 그걸 다 자식한테 스트레스를 푼다. 
 
"너는 어떻게 된 게 아직도 못하니."
 
 잔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너희가 계속해주면 그 아이는 나처럼 성인이 될 때까지 안 해본 애로 자란다. 너희가 시도할 수 있던 기회와 희망을 다 잘라버렸다. 모든 빨리빨리 연습해 보는 게 좋다. 그리고 뭐 아픈 것도 여러 가지니까 장담은 못하지만.. 너희가 노년에 자식에게 보양받겠다는 마음보다는 부담 하나 줄이면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독립 연습을 시켜라. 나는 처음에 엄마의 "너는 어떻게 된 게 아직도 못하니" 말을 들을 때는 너무 상처받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점점 정이 떨어지면서 속으로 외쳤다.
 
"그럼 나한테 좀 기회를 주지 그랬어."
 
 평생 다 해주면 역시 우리 보호자는 나를 걱정해 준다~ 우리 보호자는 내 생각을 한다~ 이런 기분이 들 거 같은 가? 아니.. 내가 제일 만만하니까 나한테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싶다.
 
 평생 다 해주니까 병원에서도 엄마만 보고 얘기한다. 질병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엄마가 다 대답한다. 내가 아픈 거다. 나도 아프다고 말할 줄 안다. 하지만 엄마가 내 마음 다 이해한다면서 내 발언권을 뺏는다. 의사도 간호사도 다 엄마만 보고 얘기한다. 엄마가 다 하니까 내가 왜 병원에 오나 싶다.
 
 내가 지워진다. 내가 사라진다. "아픈 아이"라는 이미지 하나만 가지고 내가 정말 잘 사라진다. 그렇게 병원 와서 아프다고 말할 줄 모르는 아이를 보호자가 만든다. 그거 되게 속상하다... 나도 말할 줄 아는데. 그러면서 뭐라고 하니.. 나한테 스트레스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남이 하는 걸 보면서 내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다. 이래서 중요한 거 같다. 남들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독립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용기를 얻는다. 
 
 
다음으로 "넌 너무 이기적이야. 내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데 어떻게 너 하나 밖에 모르니."라는 말이다.
 
 이건 보통 자기가 주는 관심을 내가 거부하고 나 혼자 쉬려고 하면 그렇다. 더 극심하게 들어가면 "나쁜 년."이라는 말을 한다. 욕을 하는 보호자들은 제발 문자 메시지로 '나쁜 년'이라고 써줬으면 좋겠다. 휴대폰에 증거라도 남지. 말로 해서 내 머리에 증거가 남는다. 그래서 내가 말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아파서 그러나. 내가 그런 소리 한 적이 없다. 너 너무 나한테만 너무 뭐라고 해."
 
이런 대답. 정말 어이없는 대답. 분명히 들은 나만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이다. 이것 참 맨날 녹음기를 켜고 살 수도 없고.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고. 기브 앤 테이크. 보호자들이 자식에게 본인의 관심만큼 돌려받고 싶어 하나 보다. 여기서 밑바탕으로 깔려있는 건 그놈에 살가운 딸이다. 그놈에 단정한 자식이다. 그걸 왜 나한테 요구하는가? 언제는 전부 다 다시 돌려받으려고 자식 가진 거 아니라더니. 정말 폭력적인 요구다.
 
그럼 내가 좀 맨 정신일 때 그러지. 아파서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아파 죽겠는 사람은 개인주의로 나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장 아프니까. 집에서 쉬고 싶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특성을 가진 나는 사회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이런 미친 여자가 된다. 
 
 마지막으로 "자존감 낮아지기를 늘 학습한다." 한국은 굉장한 자존감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욱 뛰어나도 인정을 받을까 할까 하는 나라이다.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는 어떨까? 그리고 엄마는 어떨까? 보호자는 어떨까? 당연히 못한다고 한다. 나 자신의 특성이 사회와 같다.'라는 인식보다는 '다르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게 곧 나 자신도 배운 그대로 나 자신을 깎아내린다. 
 
 자존감 낮아지게 하는 보호자들은 이런 얘기도 한다. "우리 집 돈 없어". 자식이 사치를 부리지 않게 가르치는 것 역시도 보호자의 몫이라는 건 알고 있다. 행복은 돈으로 전부 다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너는 못한다.'를 주장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나 자신을 깎아내린다.
 
'나는 돈 없는 집안에서 못하는 아이'.
 
 웬만해서는 돈 없어.'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나는. 제발.. 나 다음 태어난 정신질환자 아동, 만성질환자 아동들은.. 이런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내 다른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그냥 말로만 해서 해결하지 않는다. 살기 힘들다. 진심으로.. 계속 주장하고 소리 질러야 보호자들도 지쳐서 그래.. 알겠어. 해줄게. 가 된다. 요구하는 데 있어서 내가 좋은 말로 해서 해결을 하지 않는다. 보호자들도 나이 들었고 자기들이 봐온 편견으로 고집이 생겼다.
 
 
 
결론.. 만성 정신질환자 딸로 산다는 건..
 
나는 가족에게도 사회에게도 늘 시위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