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레즈비언 당사자가 레즈비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lesbian-life 2024. 8. 5. 21:07

 장애인 캐릭터도 그렇고 소수자가 아닌 (소수자를 존중할 줄 모르는) 배우들(+제작진)이 늘 소수자를 연기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 앞으로 언급 할 "강자"에 정의. 소수자와 아닌 다수자. 그 중에서도 소수자와 함께 살기 위해 소수자의 삶을 노력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자신은 다수가 말하는 '평범한 사회'가 너무 익숙하고 변화할 생각없으니 나에게 소수자의 삶을 알고 있으라고 요구하지 말라!"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을 표현. 간단하게 말하면 진보적이지 않고 보수적인 자들을 나는 "강자"라고 이 글에서는 설명하겠다.

 

 소수자가 나오는 작품을 본다고 해서 꼭 그 소수자를 존중하는게 아니다. 예술도 그렇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파민(쾌락)이 계속 같은거만 보면 지겨우니까.. 그리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다수가 아니기에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소수자기에 가지고 있는 그 새로운 가치관이나, 그들의 서사가 예술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나는 인권운동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예술을 즐길려고 보는거야.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다. 뭐.. 나는 정말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라는 뜻으로 그럴 수 있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보니 그런 소리하면 아니꼽게 들리긴 하다. 안 아니꼽다고 하면 그건 많이 거짓말이다. 이해는 한다..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수 많은 작품에서 소수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외쳤다. 강하게 했든 은은하게 말했든 소수자를 괴롭히는 자들이 제발 그러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예로는 평범한 사랑, 평범한 나'라는 키워드. 작품의 메시지가..

 

"인권존중"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키워드에 "나는 인권운동 하려는게 아니라 그냥 예술을 즐길려고 보는거야."와 쌍벽을 이루는 무책임한 말이 있다

 

"저건 그저 작품일뿐이잖아."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넘긴다.

 

 그것도 아니면 소수자들이 메시지를 짚어줘야 그제서야 "아 이게 이런 메시지였어?"하고 놀랜다. 강자들은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공부가 안 되어있다. 소수자들이 강자를 향해 이런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너희는 정말 무지해. 너희는 정말 무식해."

 

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작품조차 못 알아듣는다. 그러니 작품보다 더한 현실은 더 무지하게 받아들인다. 

 

 

 나도 소수자지만 내가 모르는 소수자들은 더 많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너무 많다. 틀린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나도 내가 모르는 소수자들이 보기엔 다수자다. 동성애자가 아니라 다른 성소수자 여성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래도 성소수자중에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들이 많이 아는거구나. 내가 성소수자 안에서는 다수의 여성이구나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다수로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하는 잘못들이 많다. 그러니까 내가 작품을 보고 "이건 그저 작품이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게라도 이해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실수를 하니까. 인간은 잘못을 깨닫는게 오래걸리니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했다. 레즈비언에 문제도 그렇고 그 안에 내포된 모든 소수자를 혐오하는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주제를 잡아볼까. 나는 이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부분을 말해보려고 한다.

 

 

1.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질감을 느낀 영화

2. 남성제작진들이 여성배우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한 부분

 

부주제- 우리가 다수자로 지내면서도 소수자의 아픔의 "조심성"을 가져야 하지 않나라는 메시지까지 전해보려고 한다.

 

 나는 혁명을 하자, 싸우고 투쟁하자 뭐 이런 메시지까지는 전달하지 않겠다. 그건 너무 큰 일이고 다수자들은 답답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까지 할 용기가 없지 않는가.

 

나는 조심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꿈꾼다.

 

 한국사회는 빨리빨리니까 성소수자, 소수자를 위한 법도 빨리 빨리 좋아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에게 실망한게 많다. 분명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 진보적인 정치인이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고향땅이 아름답다 느낀 순간보다 "부끄럽다"라고 느낀게 더 많다. 그래서 기준을 많이 낮췄다. "조심성"을 가지는 시민의식을 꿈꾸며 이 글을 써보겠다. 

 

 


 

 나는 문화생활을 하는 걸 참 좋아한다. 특히 "작품"이라는 걸 참 좋아한다. 이야기가 주는 흥미가 굉장히 크다. 배우가 싫은 건 아니지만 보통 배우보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에게 더 반한다. 가상이기에 아름다우면서도 현실감 있어서 현실에서 만나보고 싶게 하는 욕구가 들게 한다. 하지만 그 가상도 인간이 만든 거기에 정말 다양한 차별을 볼 수 있다. 

 

1. 여성 주연인 작품이 적다.

2. 소수자 여성의 주연인 작품이 적다.

3. 이성애자 중심이다.

4. 동성애자, 특히 여성 동성애자(성소수자)의 작품이 적다.

4-2. 성소수자가 진심으로 공감할 작품이 적다. 이성애자가 불쌍해~라고 생각할 성소수자 캐릭터는 많다.

5. 1~ 4-2와 동일하게 여성, 성소수자, 소수자 배우, 제작진이 적다. 

6. 배우, 제작진이 여성, 소수자, 성소수자라고 밝히기도 어렵고 밝히는 경우 무례한 대우와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이게 곧 내가 앞에서 말했던 문제와 연관이 있다. 

 

"1.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질감을 느낀 영화

2. 남성제작진들이 여성배우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한 부분"

 

 이 부분이랑도 참 연관이 깊다. 그러니 작품이 미우면서도 작품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서문도 길게 작성했으니 본론으로 얘기하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1.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질감을 느낀 영화.

바로 "가장 따듯한 색, 블루" , "아가씨" 다.

 

가장 따듯한 색, 블루. 보고 나서 팬이 제법 있는 작품이다. 그 팬들은 미리 경고한다. 뒤로 가라. 난 좋은 얘기 못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이 둘은 첫만남도 참 인상깊다. 서로 눈을 맞으면서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사랑에 분명한 계기를 준다. 사랑이 다양하니까 계기가 있는 사랑도 있다. 이성애자들에게 묻겠다. 당신들은 꼭 사랑한 대상의 이유를 반드시 기억하고 반드시 설정해두는가? 보통 그대들은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운명적으로 끌렸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까지는 뭐 "너무 억지로 까는 거 아니야?"해도 이해하겠다. 이 부분은 정말 지적하고 싶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성관계 장면이 나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차마 사진에 그걸 첨부 할 수 없으니 키스하는 장면으로 대체 하겠다. 

 

동성애자는 성관계에 미친 인간들이 아니다. (이거 정말 밑줄 100번 치고 싶다.)

 

서양 문화권이 동양인인 나보다는 성에 자유롭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밥만 먹고 섹스하고 섹스도 둘이 정말 좋아해서 사랑한다는 느낌보다 여성의 신체 일부분 확대와 함께 특정부분이 클로즈업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게 감독이 성감대로 자극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과한 신음소리와 함께 성적인 부분을 자극한다. 나는 성관계를 해본적은 없지만 작품에서 성관계를 쓰는데 목적은 알고있다.

 

1. 연인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2. 성적인 것 까지 할 정도로 이 둘이 긴밀한 관계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3. 관객들이 섹슈얼함을 느끼길 바래서.

 

 만드는 건 감독이니까 본인이 만드는데 즐거운 거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가 무슨 일을 했고 이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사람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가는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그 섹슈얼함이 나에게는 더럽다고도 다가왔다. 

 

 거기다 이 감독은 성범죄 전과가 가득하다. 작품 속에서도 동성애자 여성을 보면서 위로 받거나 레즈비언 서사를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도 않았고 아니면 나도 아무 생각 없는 거 같은 다수자들처럼 예술작품 잘 봤다~라고 하기에도 예술 작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섹스 판타지만 담은 영상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사람이고 나와 같은 레즈비언 캐릭터를 보면 너무나 이입을 잘하는데 이런 내가 작품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껴야 할까? 이런 내가 이렇게 갑자기 정신적 학대를 당해야할까? 남들은 웃으면서 잘 보는 순간에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정말 차별적으로 느껴진다.

 

당사자가 아닌 자들의 마이크를 다 뺏고 싶어진다.

 

 어쨌든 당사자는 계속 마이크를 뺏기고 당사자가 아닌 자들이 마이크를 들어서 내 말을 뺐는다. 나는 그리고 이런 작품을 보고 레즈비언의 이미지를 굳을 사람들이 걱정된다.

 

잘못만든 작품은 소수자의 삶에 너무 악영향을 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2. 아가씨

이건 그래도 정서경 작가분과 함께 썼지 않는가. 감독이 남자지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질감을 느꼈다. 

 

 일제강점기에 보수적인 집안에 부유층 여성이 하녀로 들어온 여성과 눈이 맞고 자유와 함께 성장하는 게 참 좋다. 그래 이 설정까지는 나도 인정한다. 여성끼리 서로 구원을 해주는 관계고 여성이 자유롭게 가는 것 까지도 좋다. 하지만 여성이 자유를 느끼는 게 꼭 아버지의 성적인 문어요소가 들어가야 할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아버지의 폭력성, 성적인 고통이 있어야 여성들이 각성을 할까? 다른 걸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 여성들도 사람이라 각성, 성장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남성들이 각성한 여자를 쓰는데 너무 한정적으로 쓴다. 영화 아가씨(2016년 작품) 뿐만 아니기도 하다.

 

 

 사진 출처: 왓챠피디아

 

 최근 본 영화는 '펄'에서도 나온다.  시골에 사는 여성이 완벽한 삶을 꿈꿨지만 가부장제에 정신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 안에서 망가진 채로 평생사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와중에 자위를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상가영의 영화 중독

 

자위도 상당히 가장 따듯한 색 블루처럼 남성 감독의 성감대가 의심되게 찍으며 관음적인 시선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김해원룸나라

 

 다시 영화 '아가씨'로 돌아와서.. 여기서도 성관계를 한다. 한국에서는 성관계를 보고도 영화 아가씨 속 둘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하는 걸 보면.. 성관계 씬 없으면 동성애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구나..싶다. 영화 아가씨에서는 폭력적이기다 보다는 정말 좋아하기에 하는 느낌을 받긴 했다. 이들이 억압에서 도망치고 자유를 느껴보는 느낌이 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 감독의 특징이 있다. 여성들이 성관계 할 자유는 말해도 안 하고 자유와 성장 속에서 살 자유를 말하지는 않는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성관계 시킴으로 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참 잘 말한다. 남성들이 찍은 작품 속 성관계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보여서 참 웃긴다. 야하게 표현하려고 애썼구나 싶다. 

 

 

이제 레즈비언 당사자들이 참여한 작품에서 오는 차이에 대해서 말하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프랑스 여성 감독인 셀린 시아마가 만든 작품이다. 이 감독의 작품을 통해서 톰보이, 워터 릴리스, 걸후드, 쁘띠 마망, 파리 13 영화까지 봤다. 이 감독이 쓴 작품 속 여성들은 정말 사람으로 나와서 좋다.

 

마리안느와 옐로이즈가 서로 사랑한다. 사진 속 왼쪽 초록드레스가 옐로이즈, 오른쪽 빨간 옷의 마리안느. 

 

배우들 역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배우들이거나 성소수자 배우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좋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시작은 마리안느가 여성화가들을 육성하던 와중에 제자가 초상화 하나를 꺼내게 된다. 그렇다 옐로이즈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면서 마리안느가 과거회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다. 이 작품 속 마리안느는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사랑 뿐만 아니더라도 남성들이 위주인 예술세계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그림'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혼자서 수영도 할 줄 안다. 그래서 옐로이즈에게 가던 길에 물에 빠져도 수영을 잘했다. 그리고 여긴 사랑을 하는데 운명적인 사건이 없다. 원인이 없다. 운명적인 인연이기에 사건없이도 첫눈에 눈이 맞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이 둘이 사랑을 하게 되면서 잠시 고민을 가지게 된다. '이 기분은 뭐지'. 그것도 잠시 일 뿐. 자연스럽게 서로가 좋아서 웃으면서 얘기하고 스퀸십을 나눈다. 스퀸십도 내가 앞에서는 "더럽다"라고 표현했지만 이 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혀 관음적이지 않다. 성관계를 할 때도 다른 감독들은 여성의 몸을 찍는데 열심히 한다면 셀린시아마는 여성들의 표정에 집중한다. 여성들이 즐겁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웃는 표정에 집중한다. 성관계를 통해 얻는다는 그 "오르가즘"을 느낀 여성의 표정에 집중한다. 여성의 감정에 집중을 한다는 소리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옐로이즈는 마리안느와 정반대다. 귀족아가씨다. 엄마의 결혼의 강요당하는 입장이다. 처음에 수영도 잘 하지 못했다. 늘 자유를 꿈꾸지만 마리안느처럼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활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리안느에게 큰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마리안느는 그동안 남성들이 그리는 여성을 봐왔다. 피부가 하얗고 아름다운 여성. 하지만 옐로이즈는 이렇게 말고 진짜 나를 그리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그동안 남성 예술가들이 그린 부인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남성들은 진짜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판타지 안에 있는 여성들을 그렸다. 마리안느와 옐로이즈는 사랑하는 관계기도 하면서 서로 배움을 주는 관계기도 했다.

 

그 동안 남성이 아름답고 멋진 여성을 만나 인생의 변환점이 생기는 이야기는 참 많이 봤다. 하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인생의 변환점이 생긴다. 새로움을 가지고 있다.

 

 외에도 여성들끼리 약초를 나누는 곳에 가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 주장하고 싶어하는 여성에 대해서도 이 작품은 말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다양한 여성들은 존재했다고 말해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2. 러브 라이즈 블리딩

이 작품 역시 성소수자 여성 감독과 성소수자 여성 배우가 주연으로 맡았다는 점에서 정말 좋다.

 

체육관에서 반한 둘이 사랑 때문에 벌이는 이야기에 대해서 초점이 맞춰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케이티 오브리언이라는 굉장한 배우가 인상깊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들도 근육이 가득한 여성의 몸을 좋아한다. 근육이 가득한 건강한 여성에게 육체미를 느낀 여성이 좋다. 이 관계성은 남성 감독 그 누구도 만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몸을 가진 여성 배우를 캐스팅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아직 작품을 덜 봐서 그렇지 찾아보면 있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레즈비언이 나오는 작품 중에서. 여성들도 사람이기에 미디어 속 여성 말고도 다양한 체형을 가진 여성이 존재한다. 작품을 통해 다시 보여줘서 좋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보디빌더라는 꿈을 가진 여성, 보디빌더라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직장도 나름 있다. 사격장에서 일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아버지가 물려준 체육관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운전도 할 줄 안다. 능력있는 인간 캐릭터다. 사랑하기에 계란에 노란자는 빼달라는 말에 빼주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사랑하기에 분노에 폭발해서 살인하는 경우 치워주는 역할도 한다. 사랑하니까. 여성을 보조하는 여성의 관계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한 부분이 길지가 않다. 정확히는 몰라도 확실히 저 여성이 지금 가부장제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 여성이 박살내고 자유롭게 지내는 걸 나온다.

 

 사랑하니까 둘이 붙어있게 되는데 붙어있으면서 '얘가 진짜 왜 그러는거야?!"하고 화내는 것도 나온다. 나는 이게 정말 현실감 있다고 느꼈다. 연인끼리의 사랑싸움 아닌가. 또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고. 육체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여성들의 성관계도 관음적이고 섹슈얼한 남성 시선에 촬영이 아니라 여성들이 성관계를 하며 느껴지는 쾌락에 집중되어 있어서 보기 정말 편하다. 


 결론.

 

 현실에는 해결되야 할 성소수자 문제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예술을 시작으로 당사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 당사자들이 만든 작품은 모두 소수자들이 "인간"으로 나온다. 다수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의 이미지. 예술 속 이미지 역시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까 예술 작업환경 속 여성들이 사람으로서 예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를 시작으로

 

모든 분야에 여성들이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으며 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