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날 위한 유서를 쓴다.

lesbian-life 2024. 9. 30. 09:06



유서를 쓸 때 고민이 많았다. 멋진 공책에 첫 장부터 남겨볼까 싶기도 하고. 매일 살아남으면서 내 유언은 남기고 싶었다.

형식을 만들어나 고민도 많았다.

막상 써보면 별 거 없다. 글 중앙에 '유서'라고 쓴다. 그리고 내가 년도 월 일 시간과 함께 글쓴이가 누군지 이름을 쓴다.

내가 왜 우울한지 세상에 뭘 말하고 싶은 지 (마지막으로 남기는 감정 쓰레기통이다. 우울감을 마구 분출하니까.), ex 무기력하다, 힘들다, 슬프다..

내 남은 돈이 어떻게 해결 되길 바라나도 쓴다. 사회의 기부할 생각은 없다. 이 나라가 내 돈을 어떻게 쓸 줄 알고.


유서를 쓰는 와중에도 뜨끈한 소고기 무국을 먹었다. 시도를 하려고 이리저리 검색할 때는 안 먹었다. 생각보다 시도 하려고 정보 얻을 때 찾기 어렵다.

한국은 정보든 방법이든 일단 다 접근 못하게 하는 걸로 예방하는 거 같다.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시도조차 못하고 있으니.

밥을 먹으니 좋긴 좋더라 어이가 없지.

그냥.. 그냥.. 죽는 상상을 한다.


장례식에 장송곡은 뭐가 되길 바라는지 썼다. 유서 2일차에 추가.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베일은 떨어지고'가 틀어졌으면 좋겠다. 특히 가사가 너무 공감가서 그러나.


'어둠은 끝났어. 영원의 안식처를 원해.'
'세상따위는 버려. 이 세상에 가라 앉기를..'


그러고 보니 종교는 누가 왔으면 좋겠는지 안 썼다. 난 스님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또 살까. 또 하루가 있을게. 내가 3일차 나만의 '유서'를 쓸 일이 있다면..

그때는 남겨봐야지.

유서를 적다보면 길게는 한 장 반, 짧게는 한 장이 나온다. 죽고싶다면서 세상에 할 말이 너무 많다.

내 친구 생각도 너무 많고.

새삼. 내가 세상에서 뭘 중요시 생각하고 죽지 못해 눈뜬 하루 무언가에 잘해야 하는지 알겠다.

장례식 음식에 새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쓴다.

떡볶이, 마라탕, 치킨, 닭강정. 자주 먹지 못한 것들. 그냥 나부터 잘 먹을 걸..


유서 외에도 사진도 그렇고 준비할게 참 많네. 죽음보다 돈이라는 귀신이 더 무섭다.



이래도 지금 당장 죽는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냥. 남긴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뭘 중요하게 사는 지 모르겠다면 유서를 한 번 남겨봐라. 괜찮다 이거